읽은 책 : 조슈아 키팅, 오수원 옮김. 2017 (2019) 『보이지 않는 국가들: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서울 : 예문아카이브.

1. 세계지도의 국경선이 다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세계의 모든 땅이 어떤 국가인가의 영토로 나뉘어 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막연하게 거기 나와 있는 국가들도 우리와 비슷한 국가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나라와 맞댄 경계선이 있고 (사실 우리는 단순한 국경선이 아니라 휴전선을 이고 있지만), 그 경계선 안쪽의 자국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있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나들 때는 여권이 필요한, 그런 국가 말이다.
그러나 비록 지난 20여 년 간 세계지도의 국경선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지도상의 경계선이 항상 실제의 경계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에 없지만 실재하는,” “보이지 않는 국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세계지도상의 국경선이 어떻게 고착화된 것인지 소개하고, 자신이 취재한 “보이지 않는 국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일반인들이 가진 국가와 국경선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다.
2. 지도에 보이지 않는 국가들의 사례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압하지야, 아크웨사스네, 소말릴랜드, 쿠르디스탄, 그리고 키리바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름도 생소할 이 국가들은, 정도면에선 다르지만 각자 어느 정도 “국가”라 불릴 요소들 (즉, 정부, 영토, 국민) 을 갖추었지만,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들로부터, 그들과 같은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키리바티의 경우에는 조금 문제가 다른데, 키리바티는 현재는 어엿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으나,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에 따라 수십 년 내로 영토가 사라질 위기에 있는 국가이다.)
저자는 이 “국가”라 인정받지 못하는 지역들을 소개하며, 강대국 간의 파워 게임이 약소국가의 독립 인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하고 (압하지야), “중첩된 국경” 안에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며 (아크웨사스네), 때론 국가의 요소를 다 갖추었지만, 독립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국가를 보며 “이게 국가가 아니면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소말릴랜드), 거대한 민족이 국가 없이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표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쿠르디스탄), 끝으로, 국가가 영토가 없어지게 되어도 존립할 수 있을 것인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키리바시).
저자가 소개하는 생생한 경험담에 빠져 술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국경선이 과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형태로 그어져 있는가” 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된다. 주요 사례들 사이사이 삽입된 몰타 기사단,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 리버랜드, 미국 내 무국적자 문제 등도 “대안적 국가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지난 20여 년 간 세계지도상의 국경선 변화가 거의 없는 가운데, 이렇게 기존 국가 관념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흔드는 책이 번역까지 되어 나온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3. 아쉬운 부분 : 전문성 부족
그러나 책의 메시지와 내용이 얼마나 새로운가를 놓고 보자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저자가 주로 다루는 주권, 영토, 국민 사이의 불일치는 사실 그리 드문 사례가 아니며 (중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소수민족 자치구의 독립문제, 홍콩과의 1국가 2체제 문제, 대만과의 “하나의 중국” 문제 등 각종 문제가 드러난다.), 압하지야나 소말릴랜드 같은 국제사회 미승인국에 대한 정보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쿠르드족의 이야기는 국제 시사 뉴스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문적인 면에서도, 저자는 근대국가에 대한 학술적 논의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고, 앞부분에 압하지야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세계지도(국경선)의 형성과정을 짚는 데 그친다. 책의 방향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학술적 논의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근대국가에 대해 학술적으로 다룰 때 넣어야만 하는) 베스트팔렌 조약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며 불필요하게 책이 무거워지고 혼란스러워진 느낌도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루는 사례들 간에 연관성이 적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세계지도상의 경계선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각기 어느 정도 해당되는 사항이 있으나, 이 유사-국가들 간에 유기적인 연계가 부족하여 책이 일관성 있게 들어오지 않는다. 가령, 압하지야나 쿠르디스탄을 소개할 때는 엄중한 국제관계의 문제에 대한 탐사보고서인 것 같더니, 키리바티에 이르면 흡사 여행책자에 가까운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한 가지 시각으로 사례들을 엮어서 소개했다면, 저자의 문제제기가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끝으로, 한국어판 책에 소소한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먼저,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라는 한국어판의 부제는 책의 핵심 질문이 아니다. (위의 지적과 관련해서) 오히려, 저자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책을 엮었다면 더 전문성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또한, 책 말미에 주석이 정리되어 있는데, 영문 서적 제목을 이탤릭체로 표기하지 않는다거나, (원서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앞서 소개되지 않은 책의 저자/서지 표기를 온전히 하지 않은 등의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전문적인 참고문헌들을 찾아가며 이 책을 읽을 독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주석에서 책의 완성도와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4. 그러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국가 아닌 국가들"
저자는 기존의 국가질서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지는 않으나, 오늘날 미국 트럼프 정권의 영토 인식 (국경선을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으로 보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 지방 독립운동 등의 국제정세 속에서, 대안적 국가관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우리에게도 낯선 내용이 아닌데, 한국이야말로 식민지배로 국가를 잃고, 강대국들의 영향으로 분단국가가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남/북한은 서로에게 미승인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볼 때, 이 책에 나오는 “국가 아닌 국가들”의 사례는 더 실체를 가지고 다가온다. 저자의 “오늘날의 국경선이 과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형태로 그어져 있는가”하는 질문이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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