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래로 산업의 지형도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기술이 발전하며 어떤 일자리는 없어졌고, 대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방적 산업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도입과 함께 석탄·제철 공업으로 이어졌고, 이어서 중화학 공업·내연기관, 그리고 첨단기기의 발전이 뒤따랐다. 산업의 종류는 변화해 왔으나, 모두 제조업이 중심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산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제조업이 쇠퇴하는 가운데, 서비스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한 서비스업이 늘어나고 있다. 『노동자 없는 노동 :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과 미세노동의 탄생』에서, 필 존스는 이러한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쏟아낸다.
우선 용어부터 살펴보자면, ‘플랫폼’이란 “승객과 열차가 만나는 승강장”처럼 “만남 또는 거래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매개하는 공간”으로, ‘플랫폼 노동’이란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노동 형태”을 의미한다. (KDI 경제정보센터, e-경제정보리뷰: 플랫폼노동 개념편(유튜브 동영상), 2022) 우리에게 익숙한 사례로는 배달의민족(음식주문·배달), 당근(중고거래), 숨고(생활 서비스), 로톡(법률상담) 등이 있으며, 해외까지 넓히자면 에어비앤비(공유숙박), 우버(모빌리티), 그리고 아마존(‘메커니컬터크(Mechanical Turk)’라는 플랫폼 운영)도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직접적으로 직원을 고용하여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플랫폼 경제는 서비스의 공급자가 “일하는 시간대와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사업주 입장에선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게 하며, 잠재적인 서비스 공급자에게 “일자리 기회 확대”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 업체와 서비스 공급자 간에 정식 고용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서비스 공급자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서비스 품질이 떨어질 수 있”고, “일감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렇듯 플랫폼 경제에 다양한 장점이 있고, 부차적으로 단점들도 존재하나, 대체적으로는 플랫폼 경제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된 것으로 인식된다. (위 KDI 경제정보센터 동영상)
플랫폼의 사용 경향을 보면, 일을 잘게 쪼개어 단순하고 금방 처리될 수 있는 일로 만든 뒤 플랫폼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를 모집하여 처리하는 형태가 많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봇의 접근을 막을 때 쓰이는) 캡차(CAPTCHA) 형태로 되어 있는 글이나 이미지를 판별하는 일이라든가, 사진이나 영상에서 사람/사물을 구분하여 라벨링 작업을 하는 일이라든가, 온라인 설문조사에 응하는 일들이다. 미군은 드론이 촬영한 영상에서 공습목표를 판별하기 위해 플랫폼에 레이블링을 의뢰하고, 우버는 운전기사의 얼굴이 신분증과 같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플랫폼을 활용한다. UC버클리 캠퍼스 내의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로봇이 오류를 일으켰을 때 일시적으로 원격 조종하는 일도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전반적인 업무 절차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자동화하고, 현재 기술 수준에서 자동화가 쉽지 않은 일은 플랫폼을 통해 ‘인간지능’에 염가로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AI로 인해 일자리 자체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지만, 고정적인 임금이 없어지고 값싼 일시적 일자리가 대량 양산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자들에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시간보다, 푼돈이 배정된 일거리를 기다리며 온라인 상태로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실직 상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AI의 발달로 인한] 일자리의 종말은 연막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상은 점점 더 많은 서비스직 일자리가 긱 노동, 미세노동, 크라우드 노동으로 변질되고, 자동화가 주로 노동자와 알고리즘의 협업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다. 다만, 미세노동의 경우에는 그 “일자리”란 것들이 거의 다 실직과 다를 바 없다.” (p.87)
앞서 사례를 보면 미세노동이란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닌가 싶을 것이다. 통번역이라든가 의료·법률자문과 같이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세노동으로 인해 축적된 데이터로 인해 AI가 발전하며) 미세노동의 범주도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가령, 기존에는 초벌번역과 최종감수를 모두 외국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했다면, 이제는 초벌번역은 AI에 맡기고, 사람은 AI 번역 품질에 대한 검토만 하면 되는 식이 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의 노동이 쪼개지며, 그에 대한 가치가 낮아진다. 전에는 4년제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온전한 일자리에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우수한 학사학위가 있더라도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찾아 전전하는 미세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미세노동에 주로 종사하는 사람을 미세노동자라고 하겠다.)
“이렇게 한 때는 고임금을 받던 고급 노동이 “비숙련” 노동으로 재포장되는 것은 ... 모든 미세노동 사이트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문직을 프롤레타리아트로 만들며 직업을 분쇄하는 자본의 폭력을 여실히 볼 수 있다.” (p.84)
이러한 미세노동은 주로 생계가 어려운 빈민가나 저개발국가, 난민 캠프 (또는 심지어 교도소) 등에서 이뤄지는데, 저자는 마르크스의 “은밀한 (생산) 장소(hidden abode)”라는 표현을 차용하여, 이를 “은밀한 자동화 장소”라고 표현한다. 플랫폼은 미세노동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지만, 한편으로 서로의 존재와 목적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미세노동자는 플랫폼에 공고되는 미세노동을 받아서 처리하지만, 그 일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미세노동의 결과로 AI 알고리즘이 발전하지만, 그 뒤에 있는 미세노동자들의 고생과 노력도 플랫폼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다. 세계은행이나 사마소스(Samasource)에서는 플랫폼 경제가 숙련도가 낮은 빈민이나 난민에게 추가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를 준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실상 미세노동자들은, 본인이 하는 일의 목적도 모르면서, 경력개발이나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값싼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는 그늘 속에서 암약하는 알고리즘을 위한 야경꾼으로 전락한다. 자신이 만드는 훈련 데이터가 알고리즘에 투입되어 모종의 결정으로 산출된다는 것 정도만 알 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불투명하게 남는다. ... 대형 플랫폼이 원하는 노동의 형태가 바로 이런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불투명하고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 (p.140)
일반적으로 미세노동의 대가는 건별로 지급되는데, 이는 미세노동자들이 무한 건수 경쟁을 하게 만든다. 먼저 일을 받아서 처리하는 사람이 대가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보다 빠르게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가가 항상 보장된 것도 아니다. 어떤 플랫폼에서는 현금 대신 이용권 등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의뢰인이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으면 대가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노동과 그에 따른 임금이라는 기본 상식도 깨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존재론적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정치적 문제다. 노동자와 임금의 일체성이야말로 자본을 상대로 벌이는 수많은 투쟁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임금이 없으면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노예 혹은 잉여일 뿐이다.” (p.97)
그리하여 『노동자 없는 노동』에서 그리는 플랫폼 경제의 모습은, 일종의 ‘IT기반 권위주의(IT-backed authoritarianism, 다른 말로는 테크노 권위주의 혹은 디지털 독재라고도 한다)’의 형태를 한 디스토피아다. 정부와 자본이 ‘디지털 전환’이니 ‘일자리 증대’ 같은 말로 결탁하여 열악한 미세노동을 늘려가고, 미세노동은 다시 AI의 발전에 제물이 되어 다른 일자리를 희생양으로 만든다. 그 결과물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일종의 파국적인 공산당 스타일 계획경제에 가깝다.
“IT 대기업 간 제휴가 늘어나고 또 그 기업들이 다양한 정부 기관과 계약을 맺음에 따라 데이터에 기초한 의사결정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다분히 파국적이지만 장밋빛으로 포장된 기괴한 자본주의 정치국(정치국은 본래 공산당의 최고 결정 기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 옮긴이)이 만들어지고 있다.” (p.152)
저자는 “미래는 배제된 사람들 손에 달렸다”고 하지만, 미세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우선, 미세노동자들은 대부분 일관적인 정체성이나 업무장소가 없어서 노동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수의 노동자가 근무조건이나 대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항의를 한들, 다른 노동력을 구해 대체하기가 쉽기에 큰 영향이 가지 않는다. 거기에, 저자는 중국의 이른바 “데이터 농장”을 언급하며, 미세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데이터화하여 다시 노동자를 통제하는 데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업무 수행 데이터가 다시 통제 강화에 활용됨으로서 최악의 근무조건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플랫폼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자는 속절없이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다만, 저자는 플랫폼 경제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적 이상과도 닿아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마르크스나 윌리엄 모리스 같은 사회주의 이론가들은,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한 노동(“필연의 왕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고 또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제시했는데, 플랫폼 경제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노동의 기회들이 사실 이러한 모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한정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고,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어떤 영역에서든 역량을 개발할 수 있으며, 사회는 생산 전반을 감독함으로써 내가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일은 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내가 굳이 사냥꾼, 어부,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마음 내키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소를 몰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p.210-211; 원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현재는 플랫폼 경제의 틀에서, 자본이 노동자의 생계를 볼모로 잡아 통제와 착취를 확대하고 있으나, 모든 인류의 물질적 필요성만큼 생산이 이루어지는 “탈결핍 시대”도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노동자들로부터 생계의 걱정이 사라지고,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노동을 골라가며 마치 놀이와 같이 할 수 있게 된다면, 플랫폼은 오히려 노동자의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아직 인류가 겪어본 적 없는 모습으로,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세상이라 하겠다.
마치며, 훌륭한 번역의 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이 전체적으로 번역된 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깔끔하게 번역이 되어 있다. 특히, 책의 핵심 주제가 되는 microwork라는 개념어를 번역하기 위해 “미세노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외래어로 굳어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를 “범남반구”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부분에서 옮긴이의 노력이 돋보인다. 서양의 맥락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곳곳에 주석을 덧붙인 부분도 독해에 도움이 되며, 미주(endnote)의 인용정보 중 한국어 번역서가 있는 경우에는 번역서명도 별도로 표기해 두어, 옮긴이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책의 주제도 노동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는 내용인 만큼, 옮긴이의 전문성과 섬세함에 대해서도 응분한 존중이 주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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