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mond, Jared, 1999 [1997],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0. ‘과학적 글쓰기’ (학술적 글쓰기)
과학은 ‘(체계적으로)아는 것, 또는 그 체계’를 의미한다. 영어(또는 불어)로 science는, 지식·이해·학습을 뜻하는 라틴어 scientia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독일어에서 이에 해당하는 Wissenschaft는, 더 직관적으로 알다(wissen) 라는 단어를 명사화한 단어이다. 좁은 의미로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지식의 집합체인 자연과학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체계화하여 아는 모든 것들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계적으로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 관점은 ‘과학적 방법 scientific method을 거쳐 알게 된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관찰을 통한 가설의 검증’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건 A와 B 간의 관계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가설)을 만들고, 실제 관찰을 통해 이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과학적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허공에 놓으면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라든가, ‘금속으로 된 물건이 주변 사물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벼락이 거기에 떨어질 것이다’ 같은 가설들은 (실험 결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증명되고, 이 과정을 통해 ‘과학적인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과학이 ‘사회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독창적인 연구를 고안함으로써 자신의 연구가 절대적인 진리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연구가 너무나 참신한 나머지 다른 과학자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연구 방법이 ‘과학적 방법’이 맞는지 (따라서 이를 통해 얻어진 지식이 ‘과학적 지식’이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과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방법이 ‘과학적 방법’이었으며, 자신의 발견이 ‘과학적 지식’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을 글(논문)을 통해 주장하고, 이는 다른 과학자 동료들의 심사(peer review)를 통해 판정을 받아 학술지에 게재된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고 발견한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특히 다른 과학자들)이 읽고 검증할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 연구가 지속되어 오면서, 이렇게 다른 이들이 검증할 수 있도록 쓰는 ‘과학적인 글,’ (또는, ‘학술적인 글’) 곧 연구 논문도 특정한 요소들을 갖추게 되었다. ‘과학적인 글’은 대체적으로 다음의 사항을 포함한다.
1. 연구질문 (무엇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는 글인가?)
2. 기존문헌 검토 (해당 주제에 대한 기존의 지식이 무엇인가? 기존 지식은 어떤 점에서 부족한가?)
3. 새로운 가설 (어떠한 논리/이론으로 새롭게 접근하고자 하는가?)
4. 연구방법 (위 논리를 실제 적용하여 관찰을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5. 실제분석 (위 방법을 적용해보니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6. 함의 (이 결과가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총, 균, 쇠』라는 책은, 어느 자연과학자가 ‘과학적 글쓰기’를 통해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1. ‘과학적 글쓰기’ 틀에 따른 『총, 균, 쇠』 중심내용 요약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원래 생리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이다. 그는 1972년 7월 뉴기니에서 조류 진화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의 한 정치인인 얄리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당신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만들어 뉴기니로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하는가?” 이는 그대로 『총, 균, 쇠』의 연구질문이 된다. 왜 대륙 간에 물질문명 발달 정도가 달라졌는가?
(화물 cargo이란, 뉴기니를 포함한 멜라네시아에서 서구의 공산품을 일컬을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약 두 세기 전까지 ‘석기시대’에 머물었던 멜라네시아인들에게 공산품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져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일본의 수송기들이 활주로를 만들어 공산물자를 실어 오는 모습을 본 멜라네시아인들은, 선조들이 비행기나 배를 타고 이러한 ‘화물’을 가져오리라 기대하며 활주로를 흉내내 만들기도 했는데, 이를 ‘화물숭배 cargo cult’라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설명은 ‘인종차이’ 또는 ‘문화차이’였을 것이다. ‘백인이 더 똑똑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라거나, ‘백인이 더 근면하고 진취적이기 때문’이라는 대답들 말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답변을 거부한다. 우리는 흔히 물질문명의 발달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역으로 그 문명 사람들의 개별 능력이 훌륭할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지켜본 바, ‘화물을 만들지 못한’ 얄리 부족의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능은 결코 백인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존 설명 중 다음으로 유행한 것은 ‘위도차이’이다. ‘겨울이 춥고 어두운 북부 유럽에서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또는 어두운 겨울 동안 실내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기술발전이 촉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북부 유럽이 기술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앞서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짧은 기간뿐이었다며, 이 설명도 기각한다. 그렇다면 물질문명의 차이를 만들어낸 원인은 결국 무엇인가?
여기에서 다이아몬드는 표면적인 개개인 역량의 차이가 아니라, 문명들의 차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 ‘구조적인 원인’을 찾아 나선다. (서구 백인의) 물질문명이 다른 민족들을 굴복시킨 무기는 책의 제목인 총, 균, 쇠이다. 이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보유하게 된 것들인데,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은 인구이다. 인구가 많으면 그 안에서 다양한 기술이 고안되고 실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총과 쇠가 ‘기술 발달의 결과’라는 것은 쉽게 와닿지만, “균”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균이란 한 문명이 농축업과 밀집생활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미생물·병원체를 의미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 문명의 구성원들은 해당 균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여 균과 공존할 수 있게 되지만, 이 균을 새로 마주치는 (가령, 그 균을 보유한 가축을 길들인 적 없는) 문명의 구성원들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식량이 필요하다. 이를 도표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현실에 적용하여 검토해보자. (자연과학 연구라면 실험을 통해 결과를 관측해야겠지만, 사회현상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통제하고 실험할 수가 없어,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진 곳들에서 벌어진 역사를 따져보게 된다.)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식량자원들은 서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발원한 것이다. 이 지역에는 다른 지역보다 인류가 먹을 수 있는 곡물의 종류도 많았고,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의 종류도 많았다.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대륙보다 인구 부양에 유리했고, 기술을 발전시킨 유라시아 대륙의 백인들이 미대륙으로 건너가 “총·균·쇠”를 앞세워 원주민을 정복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설명이다.
『총, 균, 쇠』는 이렇게, 물질문명 발달의 차이가 인종적 우수성의 차이나 문화적 근면성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결론의 의미는 곧, 문명들의 출발 조건이 달랐다면, 이제껏 인류가 활용한 식량자원이 유라시아가 아니라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역으로 아프리카인들이 기술을 발전시켜 유라시아를 식민지배하고, 흑인에 의한 다른 인종 차별이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총, 균, 쇠』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는, 이렇듯 이 책의 결론이 인종·문화 차별의 근거를 흔든다는 것이다.
□ 『총, 균, 쇠』의 중심구조 (정리 예시)
1. 연구질문 : 왜 어떤 문명은 다른 문명보다 산업생산력(기술)이 발달했는가?
2. 기존문헌 검토 : 인종별 생물학적 차이 → 기각 (다른 인종의 지적 능력이 백인보다 못하지 않다)
위도의 차이 → 기각 (고대의 기술들은 따뜻한 지역에서 더 먼저 발달하였다)
3. 새로운 가설 : 식량 생산력(인구 부양력)이 높은 곳에서 기술이 발전하였다.
4. 연구방법 :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역사 속 문명의 사례들이 위 가설에 부합하는지 살펴본다.
5. 실제분석 : 유라시아 대륙이 다른 대륙보다 식량 생산(인구 부양)에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다른 문명을 식민화하게 되었다.
6. 함의 : 문명발달의 차이는 인종적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함.
이상은 앞서 설명한 ‘과학적 글쓰기’의 요소에 맞춰 『총, 균, 쇠』의 개요를 정리해 본 것이다. 책의 분량 자체는 많지만, 저자가 책의 전체 흐름을 이러한 ‘과학적 글쓰기’ 틀에 맞춰 전개하고 있어서, 얼개를 비교적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단순한 정리로는 저자의 풍부한 설명과 세세한 내용들을 놓치게 된다. 그러나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이, 저자의 핵심 주장을 파악하고, 각 부분이 책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독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업 도시 거제는 어떻게 부흥하고 쇠락하는가? (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서평) (0) | 2021.04.19 |
---|---|
지도에 없는 나라들이 있다? 조슈아 키팅,『보이지 않는 국가들』 (0) | 2021.03.09 |
코로나19는 예견되어 있었다?『인수공통 전염병 (Spillover)』읽기 (0) | 2021.03.07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의 내용과 의미 (0) | 2021.03.07 |
어른이 되어『창가의 토토』읽기 (0) | 2021.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