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 Sagan, Carl, 2013 [1980], Cosmos, New York: Ballentine Books Trade Paperbacks.
1. 『코스모스』의 부흥
- 대중적인 과학서적이라고 한다면, 『이기적 유전자』, 『엔트로피』 등과 함께 항상 거론되는 책이 『코스모스』이다. 소위 “서울대 권장도서”라는 리스트에도 들어가고, 실제 서울대 지원자들이 읽은 책 중에서도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코스모스』는 20위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모두가 책장에 한 권쯤 가지고 있는 책, 그러나 두께에 압도되어 막상 책장에서 꺼내보는 사람은 잘 없는 책. (출판사 홍보로는)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교양서”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코스모스』는 손때도 묻지 않은 채 수줍게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책일 것이다.
- 『코스모스』가 출간된 지 40년, 책을 읽어준다는 TV방송에서 『코스모스』를 소개한 뒤 다시 조그맣게 『코스모스』 붐이 불기 시작했고, 책을 소개한다는 유튜버들도 앞 다투어 『코스모스』를 소개하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추천사를 날렸다. 때맞추어 칼 세이건의 동료이자 (세 번째) 아내였던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이란 책이 한국에 발매되고, 한국 TV채널에서는 드루얀이 닐 디그레스 타이슨과 함께 만든 새로운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도 방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코스모스』의 시대가 다시 온 것 같다.
- 언젠가부터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빨라져, 읽지 않은 책이 쌓여있는 책장을 서성거리던 내 눈에 방송 컴백으로 다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코스모스』가 들어왔다. 그래, 이거라도 읽어보자. 요새 TV에서도 나오고, 다들 재밌다잖아.
2. 이게... 아니었나?
- 그렇게 읽게 된 『코스모스』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지금은 상식이 되었거나,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 그리고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별반 신기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코스모스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하다.” - 네 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그 옛날에 사람들이 수학적 원리를 응용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내고 둘레를 쟀다.” - 그걸 재서 어디 썼대요?
“신의 세상 만물을 완벽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믿었던 케플러는 행성들의 궤도가 온전한 원이 아니어서 충격을 받았다.” - 아닐 수도 있지 그걸 뭐...
“구골이나, 구골플렉스 같은 숫자도, 무한에 대해서는 숫자 1과 똑같이 멀다.” - 수학시간에 그렇다고 배우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저자와의 포인트가 계속 엇나가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계속 우주에 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낸 사람들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늘어놓았지만, 내게는 “왜” 그랬다는 건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가 와 닿지 않았다. 또한, 은하수에 대한 신화적 관점들을 소개하다가 갑자기 “고대 이오니아에서 (은하수를 신화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 과학적 방법론이 발달하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되며 다 날아갔다”같은, 개인적인 시각의 과학사 읽기에 거부감도 들었다.
- 그러고 보니 『코스모스』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람 (“친구의 친구”, 실존인물인지는 모르겠다)들은 다 이공계생인 것 같았다. 아... 내가 이과감성이 없어서 이런 재미있는 진리탐구의 이야기가 별로 재미가 없는 것인가? 닐 디그레스 타이슨은 『코스모스』를 읽고 천문학자를 꿈꾸게 되었다던데...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낑낑대고 읽으면서도) 그들과 같은 감동과 재미를 받을 수 없는 내가 안타까워졌다.
- 사실, 책이 도저히 못 읽겠는 내용으로 방방곡곡 차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예 재미가 없었다면 위에 쓴 예시들도 기억이 나지 않았겠지.) “우리는 별과 같은 물질로 되어있다. (...) 우리는 진정 코스모스의 자식들이다” 같은, 이과감성 충만한 문구는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과학적 추론에 근거한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코스모스』에서 기대했던, (과학사적인 부분이 아니라) 천체물리학의 가설들과 발견들도 나름 재미있었다. 특히, 도플러효과를 응용해 보니 별들이 다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부분이라거나, 펄사나 퀘이사 같은 부분은 전에 제대로 알지 못하던 내용들이어서 흥미로웠으며, 지금은 창작물의 소재로 왕왕 쓰이는 평행우주나 다중우주의 가능성 같은 내용들이 『코스모스』가 쓰이던 70년대에 이미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도 그 자체로 신기한 일이었다. 다만, 그래서 내겐 이 책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3. 내식대로 『코스모스』 읽기
-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한 지 넉 달이 지나고, 독서모임에서 읽은 내용을 정리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자고 기치를 들었던 주동자로, 다른 동료들에게 이 책의 의미를 정리해주어야 할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리뷰과제가 있을 때 으레 해온 것처럼, 우선 『코스모스』의 목차를 따라 적고, 눈에 띄는 문장들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정리를 하며 도처에 널려있는 TMI 속에서 몇 가지 문장들을 뽑아내고 나니, 『코스모스』의 전체적인 그림이 비로소 들어왔다. 『코스모스』는 먼저 이 코스모스가 얼마나 광대하고, 우리 지구가 얼마나 티끌같은 존재인지를 보이며 (1장), 우주 전체 관점에서는 지구의 생태계도 “하나의 경우”일 뿐이며 (2장), 우리가 이 우주에 대해 어떻게 알아가기 시작했는가 (3장)를 보인다. 이어 온실효과로 너무 뜨거운 금성 (4장)과 극한환경이라 생명이 살기 어려운 화성 (5장)의 얘기를 통해 우리에게는 “지구만이 천국”이라는 얘기를 하고, 외행성에 대한 탐구의 이야기들 (6장)을 거쳐, 은하수에로까지 시선을 보낸다 (7장).
- 후반부에서는 성간여행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하며 (8장), 별들의 생애, 그리고 우리가 별들과 같은 물질로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강조한 뒤 (9장), 코스모스의 끝은 어떠할까, 우리의 우주 말고 다른 우주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던지는 한편 (10장), 인류가 유전자-두뇌-책(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종 차원의 기억 메커니즘에 전자통신 기술을 더하게 되고 (11장), 이를 바탕으로, 확률상 우리 말고도 코스모스 어딘가 있을 외계 지적생명체와의 교신 가능성에 대한 상상 (12장)에 이어, 우리는 지구의 대변인으로서, 우리의 지구를 소중히 여기고, 코스모스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가야 한다 (13장)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 이렇게 글을 전개하며, 저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반복한다.
“코스모스 전체를 바다라고 한다면, 지구 전체는 그 해변가 정도일 뿐이다.”
“우리는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별의 자식들이다.”
“코스모스 어딘가에 우리와 다른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저에 있는 핵심으로, 저자는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곧, 우리는 과학기술 (열려있는, 합리적인 방법론)을 통해 우리가 이 거대한 우주에서 티끌과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작은 지구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행성이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정리하자면, 저자는 『코스모스』에서 천체물리학적·과학사적 지식을 통해 우리가 이 우주 안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보이되, 앞으로 과학기술을 통해 우리가 지구적 통합을 이루고, 코스모스라는 대양을 향한 항해에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책 전반에 깔고 있다. 이 책이 40년의 세월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면,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칼 세이건의 긍정적 자세가 사람들의 지적 항해에 대한 영감을 자극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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